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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과 현재, 자연과 최첨단을 아우르는 위대한 모험 BON IVER LIVE IN SEOUL

작성자 DINPOST (ip:)

작성일 2020-01-14 18:24:14

조회 4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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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최신작 [i, i], 그리고 샘플링과 오토튠 중심의 퍼포먼스가 펼쳐진 첫 번째
CHAPTER.



십수 년 전 위스콘신의 숲속 오두막에 은신해 외롭게 데뷔 앨범을 만들었던 저스틴 버논(Justin Vernon)은 결국 그 노래들로 인해 자신만의 오두막을 탈출한다. 이후에는 알려진 대로 인디 록 씬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에 서게 되는 저스틴 버논, 그리고 그의 본 이베어(Bon Iver)는 현재 미국 전역의 아레나 규모의 공연을 매진 시키고 있으며, 아시아를 비롯 전 세계 투어 또한 감행하기에 이른다. 이미 2016년 한번 한국을 찾았던 적이 있는 본 이베어는 4년이 지난 지금 더욱 큰 이름이 되어 돌아왔다.


저스틴 버논, 본 이베어의 예술적 성취를 있는 그대로 흡수할 수 있는 현장이라 할만했다. 눈부신 빛의 쇼, 그리고 놀라운 사운드를 내내 체감할 수 있었다. 본 이베어의 곡들이 춤추기에 좋은 성격은 아니었던 지라 관객들 또한 대체로 차분한 상태로 공연을 관람했다. 곡과 곡 사이 텀이 생길 때마다 관객석에서는 정적이 흘렀다. 사실 이는 소극적인 침묵이라기 보다 압도당해 얼어 있는 모습에 더 가까웠다.



Photo. KAIPAPARAZZI



대기 이후 입장이 시작됐고 장내에는 케어테이커(The Caretaker)의 앰비언트 / 뮤지끄 콩크레트 걸작 [An Empty Bliss Beyond This World]의 몇몇 수록 곡들, 그리고 펭귄 카페 오케스트라(Penguin Cafe Orchestra)의 곡들이 흘러나왔다.


이브라힘 페레(Ibrahim Ferrer)를 비롯한 월드 뮤직, 그리고 빌 페이(Bill Fay)의 'Be Not So Fearful' 같은 곡이 흐를 때는 확실히 본 이베어의 뿌리 같은 것을 가늠해볼 수 있었다. 'Be Not So Fearful' 같은 곡의 경우 이후 [워킹 데드(The Walking Dead)]에 삽입된 A.C. 뉴먼(A.C. Newman)의 버전으로 익숙한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흥미로운 곡들이 흘러나오는 와중 일곱 시 정각, 불이 꺼졌다.


마치 사운드 아트 같은 인트로 'Yi'가 흐르면서 저스틴 버논과 구성원들이 등장하고 [i,i] 앨범의 전개 그대로 'iMi'를 곧바로 이어나갔다. 어쿠스틱 기타, 두 대의 드럼과 프리 재즈 같은 색소폰 솔로가 함께 맞물려 흘러갔고, 괴성의 샘플 루핑을 시작으로 민속적인 'We'가 두 대의 베이스와 함께 전개됐다.


본 이베어의 주축 멤버인 션 캐리(Sean Carey)의 경우 이 곡에서 한 손으로는 건반을, 그리고 다른 한 손으로는 드럼을 연주하기도 했는데 공연에서는 대체로 모든 멤버들이 다양한 악기들을 오가며 진행해 나갔다. 트레몰로 걸린 신시사이저와 코러스가 쌓아 올려질 때 점차 조명이 밝아진 후 빛을 차단해내는 효과를 줬던 'Holyfields,'까지 [i,i] 앨범의 첫 네 곡의 퍼포먼스를 완성해냈다. 'Holyfields,'와 비슷한 리듬을 유지하면서 스튜디오 버전보다 조금 더 현대적인 모양새로 구현한 'Lump Sum'까지 끝낸 후 저스틴 버논은 처음으로 관객에게 멘트를 한다.



Photo. KAIPAPARAZZI



아날로그 리듬 머신과 함께 딜레이 걸린 기타가 전면에 등장하는 ‘666 ʇ'에서는 드럼 필인 시 싸이키 조명을 마치 천둥처럼 연출시켜내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곡에서 저스틴 버논은 고음의 오토튠, 그리고 션 캐리는 저음 오토튠으로 묘한 화음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과거 공연에서 저스틴 버논은 원래 이 곡에서 텔레캐스터를 사용해왔는데, 이번 내한에서는 루츠(The Roots)의 캡틴 커크 더글라스(Captain Kirk Douglas)의 시그니처 SG를 사용하고 있는 듯 보였다.


저스틴 버논 홀로 보코더와 오토튠을 적절히 섞어 마치 고백하듯 노래한 ‘715 - CR∑∑KS’까지 [22, A Million] 앨범의 곡들을 연결하였고, 레스 폴을 연주하는 저스틴 버논의 로맨틱한 분위기 'U (Man Like)'를 션 캐리와 함께 차분히 이어나갔다.



Photo. KAIPAPARAZZI



알란 와츠(Alan Watts)의 내레이션 이후 두 대의 드럼이 추진력 있게 뻗어나가는 'Faith', 그리고 푸른 조명 아래 목가적인 'Marion'까지 어떤 청명한 풍경을 스스로의 방식대로 그려냈다. 저스틴 버논이 색소폰 연주자 마이클 루이스(Michael Lewis)와 단둘이 완성한 '____45_____'는 마치 미래시대의 가스펠처럼 들렸고, 반복되는 샘플 이후 가장 격렬한 조명과 텐션을 보여줬던 '33 "GOD"' 이후 각 멤버를 소개했다.


곧 쉬는 시간을 가질 테니 화장실을 다녀오라는 언급과 함께 데뷔 작의 자연 친화적 컨트리 트랙 'Creature Fear'에서 원곡 이상의 격렬함을 뿜어낸 이들은 아레나 록 밴드다운 웅대한 인상을 남긴 채 1부를 종료한다.



Photo. KAIPAPARAZZI



초기의 풍요로운 밴드 사운드가 두드러진 두 번째 CHAPTER.

인터미션 이후 미니멀한 샘플 루핑으로 시작된 2부. 오토튠과 슬라이드 바를 활용한 기타 솔로가 인상적인 'Jelmore', 기분 좋은 바이브가 내내 전개되는 'Salem'에서는 저스틴 버논이 무릎을 꿇고 기타 솔로를 진행하는데 마치 그레잇풀 데드(Grateful Dead) 식의 잼 밴드 같은 무아지경의 흐름을 보여준다. 'Hey, Ma' 같은 곡에서는 관객들이 후렴구를 따라 부르기도 했으며, 'Perth'의 익숙한 기타 인트로가 흐르자 관객들이 환호하기도 했다.


마치 워 온 드럭스(War on Drugs)처럼 찰랑거리는 'Towers', 곡 제목에 걸맞은 붉은 조명과 함께 앤드류 피츠패트릭(Andrew Fitzpatrick)의 이보우 연주와 션 캐리의 백 보컬 화음이 인상적이었던 'Blood Bank', 그리고 감동의 히트트랙 'Holocene' 같은 초기 곡들 경우 확실히 록 밴드적 쾌감을 선사했다.



Photo. KAIPAPARAZZI


곡이 끝난 후 저스틴 버논은 성폭력 상담 기관에 대한 설명과 모금에 관해 언급하기도 한다. 알려진 대로 본 이베어와 함께 [Come Through]라는 쇼를 전개 중이었던 댄스 극단 TU 댄스의 공동 설립자가 성범죄로 기소되면서 앞으로 계획된 댄스 팀과의 공연을 취소하고 환불해주겠다는 결정을 내렸던 만큼 이 문제에 대해 다시금 곱씹는 듯한 제스처를 취했다. 사람들의 지지를 얻은 이 코멘트 이후에는 건반과 팔세토 창법, 그리고 색소폰과 함께 명상적인 'Sh'Diah'를 완수해냈고, 민속적인 반복구가 기억에 남는 'Naeem'에서는 드물게 저스틴 버논이 격렬하게 소리치며 뜨거운 무대를 만들어 나갔다.



Photo. KAIPAPARAZZI


'Naeem'을 마친 후 기타 스트랩을 풀고 헤드폰을 벗은 저스틴 버논은 한 곡을 더 부르겠다면서 'RABi'를 통해 여유로운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Yi'로 시작해 'RABi'까지 우리는 이번 공연을 통해 [i, i] 앨범의 수록곡 전체를 라이브로 감상할 수 있게 됐다. 이렇게까지 한 공연에서 앨범 전곡을 통째로 돌리는 경우는 최근의 U2 정도를 제외하고는 정말로 드문 일이지 않나 싶다.


무대 위에 모두가 사라진 이후 결국 앵콜 요청으로 다시 등장한 저스틴 버논은 모두가 기다렸던 'Skinny Love'를 홀로 무대에 선 채 부르면서 이번 공연을 매듭지었다. 초기 본 이베어의 포크 트랙들을 좋아했던 이들이라면 무척 값진 순간이었을 것이다. 곡이 끝난 후에는 이제는 정말로 끝이라는 듯 머리에 두르고 있던 헤어 밴드마저 풀며 퇴장했다.



Photo. KAIPAPARAZZI



선명한 사운드에 완전히 둘러싸여 감상할 수 있었던 공연이었다. 1부가 샘플링을 활용한 디지털적인 냉기를 강조했다면 2부에서는 생 악기 위주의 밴드 사운드를 통해 서늘한 숲에 있는 듯한 분위기를 안겨줬다. 편차는 있지만 두 구성 모두 아름다운 광경을 선사했음에는 동일하다.


본 이베어는 미묘하게 여러 가지를 뒤섞고 또한 해체해갔는데, 로큰롤과 오토튠, 미국적인 루츠 뮤직과 월드비트, 그리고 재즈 발라드와 프리 재즈를 기이하게 연결 지어냈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질감, 그리고 그것들의 충돌을 다루는 격렬한 실험이 진행되는 와중에도 신기하게도 관객들은 마음의 평화를 유지할 수 있었다.



Photo. KAIPAPARAZZI


이전에 비해 션 캐리의 비중이 커졌고 심지어는 이전처럼 뒤가 아닌 무대 앞쪽에 그의 자리가 배치되기도 했다. 션 캐리는 드럼은 물론 코러스와 건반으로도 활약하면서 마치 플레이밍 립스(The Flaming Lips)에서의 스티븐 드로즈드(Steven Drozd)와 비슷하게 포지션 이동을 했다. 원체 본 이베어 투어 멤버들이 다양한 악기들을 돌아가며 연주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기는 한데, 무대 위에서의 이런 변칙적인 조합이 꽤나 스릴 있고 탄탄하게 전개된다.


본 이베어는 근 얼마 동안 대규모 아레나에서도 적합한 퍼포먼스를 할 수 있음을 증명해왔다. 그리고 이번 기회를 통해 우리는 그 현장을 목격하게 됐다. 개인적이고 조용한 음악이 큰 공간에 어울리도록 그럴듯한 확장을 이뤄냈고 이런 방식은 훌륭하게 작동해나갔다. 내 경우에는 소박한 1, 2집을 최근 작보다 더 좋아해왔는데 오히려 라이브에서는 3, 4집의 음향을 구현해내는 방식이 보다 흥미롭게 다가왔다.



Photo. KAIPAPARAZZI


무대 위에서 쏟아지는 소리들은 마치 열렬히 삶을 긍정하고 있다는 듯한 인상을 줬다. 저스틴 버논은 성급하지 않게 자신이 받은 영감을 같은 공간 안에 있는 사람들과 공유하려 했고, 무대 아래에 있는 이들은 저스틴 버논이 느끼는 감정을 마찬가지로 감지할 수 있었다. 경외심을 불러일으키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반영한 소리들이 장내를 채웠고 관객들은 그 소리에 마음껏 기댈 수 있었다. 수평선을 향해 펼쳐지는 화려한 일몰과도 같은 풍경이 내내 펼쳐졌다. 이 눈부신 소리의 빛은 손에 잡힐 듯 가깝게 느껴졌고 때문에 더욱 각별했다.








SET LIST







SET 1.

Yi

iMi

We

Holyfields,

Lump Sum

666 ʇ

715 - CR∑∑KS

U (Man Like)

Faith

Marion

____45_____

33 "GOD"

Creature Fear



SET 2.

Jelmore

Salem

Hey, Ma

Perth

Towers

Blood Bank

Holocene

Sh'Diah

Naeem

RABi

Skinny Love









WRITER

한상철

불싸조라는 밴드에서 기타를 치는 뮤지션이자
다방면의 음악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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